2008/12/20

까만 마루의 추억


무릎 나온 회색 내복을 입고 아침에 일어나 창호지 미닫이 문을 스르르 열면 삼촌과 할아버지가 집에서 기르는 소에게 아침을 주려고 여물를 써는 소리가 써억써억 하고 들립니다. 옆에 가마솥에 썬 짚을 넣을 때면 하얀 김이 차가운 겨울 날씨를 잊을 정도로 한 가득 피어 오름니다.
안방을 나와 넓은 마루에 맨발을 내딛일 때 느끼는 차가움은 발이 바루에 붙어 버릴 것 같은 쨍한 느낌입니다. 그 마루는 진한 색으로 퇴색되어 까만 색으로 기억 됩니다.

이렇게 어렸을 때의 기억을 하면 할아버지가 계신 시골에서 삼촌과 놀던 생각 만이 남아있습니다. 누나가 국민학교에 다니고 동생이 아기 였을때 아이가 셋이나 되는 집에서 어머니가 아이들을 건사하기 위해서는 누나가 방학을 맞이 할 때마다 나는 시골에 내려가서 1개월에서 2개월 동안을 지내야 했습니다. 방학이 지나 집으로 돌아오면 위치가 바뀐 가구와 쑥 커버린 동생을 보며 다른 집에 온 것 같은 어색한 느낌으로 몇 일을 지내야 했습니다.

심리학적인 지식으로 내가 이러한 환경에 자라서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면서도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이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기억은 생활을 위해 모아 놓은 통장의 돈 보다 값지게 느껴집니다. 어릴적 가지는 누나와 동생에 대한 컴플랙스도 충분히 보상할 만큼 소중합니다.

삼촌이 유리먹인 실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연을 뒷 밭에 몰래 가지고 나와 날리던 팽팽한 실의 느낌, 개울에서 코가 빨개 지도록 설매를 타던 기억, 증조 할머니와 화로에서 밤을 먹던 기억과 여름에는 미꾸라지 잡으러 갔던 기억들

지금도 복잡한 회사생활을 하다가 가끔씩 시골에 내 마음에 드는 넓은 까만 마루가 있는 깨끗한 한옥을 짓고 사는 꿈을 꾸곤합니다. 아침에 넓은 까만 마루에서 신문을 펴서 보고 있는 나를 상상합니다.

- 2008.12.20, jtl

0 개의 댓글:

댓글 쓰기